전자소송시대 '전자증거' 증거조사 어떻게…
전자소송시대 '전자증거' 증거조사 어떻게… |
CD형태 제출된 訴狀, 캡쳐한 JPG그림파일, 변환한 PDF파일 등 위조나 변조 쉽고 수집에 과다한 비용 들어 재판절차 혼란 우려 전자증거 출력한 프린트물 제출경우 동일한 증거로 볼지도 논란 |
본격적인 전자소송시대를 앞두고 ‘전자증거에 대한 증거조사 방식’ 등 달라지는 재판환경과 관련한 법규정들을 하루바삐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선 법원에서는 관련 법규정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자소송이 본격화되면 재판절차에 큰 혼선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종이가 아닌 CD형태로 제출된 소장, 이메일 수신화면을 캡쳐한 JPG 그림파일, 차용증을 스캐닝해 PDF파일로 변환한 파일 등 그동안 종이문서로 제출되던 자료들이 점차 전자증거로 바뀌면서 법정에서 이들을 어떻게 구현해 증거조사를 해야 되는지를 두고 현재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또 출력된 프린트물을 전자증거 대신 제출한 경우 과연 동일한 증거로 봐야 하는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사법연수원은 지난 4개월동안 전국법원 판사들로 이뤄진 ‘증거조사심화반’을 구성해 4가지 파트(민사, 형사, 감정, 증인)로 나눠 각종 증거조사방법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 연구반 민사조는 ‘전자증거에 대한 증거조사’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최근 그동안의 논의성과를 모아 발표했다. 연구에 참여했던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본격적인 전자소송시대를 앞두고 활발한 논의가 오갔다”며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좀더 구체적인 관련규정 정비 및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자증거도 ‘문서’로 봐야 하나?= 현재 가장 논의가 활발한 것은 전자증거도 종이문서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세미나에 참여한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전자증거는 컴퓨터 등 정보처리시스템에 의해 전자적 형태로 표현돼 있고,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전달하는 점에서 종이문서와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다”며 “전자적 기록물 중 어느 범위까지 전자문서로 볼 것인지, 문자정보 이외에 음성이나 영상정보도 전자문서에 포함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이 문제된다”고 말했다.
전자문서가 문서가 되는지 여부는 △민사소송법상 증거조사방법을 무엇으로 할지 △법률행위를 문서의 형태로 요구하는 경우 전자문서로 대신할 수 있는지 여부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시급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민사소송 등에서의 전자문서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2조1호에 의하면 전자문서는 컴퓨터 등 정보처리능력을 가진 장치에 의해 전자적인 형태로 작성되거나 변환돼 송신·수신 또는 저장되는 정보를 말한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전자문서란 컴퓨터 등 정보처리시스템에 의해 작성겷낯츃저장되고 컴퓨터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 내용을 인식할 수 없는 것으로서 그 내용이 인간의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많은 법령에서는 전자문서를 문서로 간주해 취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대부분의 공공기관이나 기업체도 종이문서를 점차 전자문서로 대체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도 현재 전자증거의 경우, 일반 종이문서와 같이 취급해 ‘서증’규정을 준용해 증거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추세다. 서증이란 법관이 문서를 열람해 기재돼 있는 내용을 인식하는 증거조사방법으로, 법관이 오관을 통해 증거를 인식하는 검증과 구별되는 방법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현재 법정에서는 적어도 문자정보를 증거자료로 하는 전자증거의 경우, 컴퓨터를 이용해 재생한 다음 열람하는 방법으로 증거조사가 이뤄진다”며 “이런 증거조사방법은 문자정보를 눈으로 읽어 그 의미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법관의 오감을 이용해 감정물의 형상 등을 지득하는 검증절차보다는 서증조사의 모습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자증거를 컴퓨터 등을 이용해 열람한 후 다시 문자정보를 검증조서에 기재하는 방법은 출력문서와의 내용적 중복성 등에 비춰보면 시간과 비용낭비가 심하다”며 “전자증거는 서증의 특별한 형태로 보고 민사소송법 제343조 ‘문서’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 문서제출명령(346조), 문서송부촉탁(352조)의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위조 쉬워 증거보관, 반환 등 규정 정비돼야= 그러나 전자증거의 경우 위조나 변조가 쉽고 수집에 과도한 비용이 들어 관련 규정이 정비될 필요성이 크다. 전자증거를 출력한 프린트물을 전자증거 대신 제출하는 경우도 문제다. 출력문서가 과연 전자증거와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진정한 증거인지가 담보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현재 출력문서를 전자증거 대신 제출한 경우, 법원에서는 서증절차에 준용해 증거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그러나 상대방이 전자증거와 출력문서의 내용적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는 등 다툼이 있는 경우, 감정인을 선정하거나 또는 출력한 사람에 대해 증인신문을 하는 등의 방법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증거수집에 과도한 비용이 드는 것도 문제다. 전자증거를 종이문서로 보고 문서제출명령을 했을 경우, 출력을 비롯해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으는 데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원본문서의 필적, 지질 등이 그대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증거인정여부와 함께 전자증거를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필체나 재질, 필적 등이 증거의 증명력 판단에 결정적일 때가 있는데 전자문서의 경우, 이런 점에 매우 취약하다”며 “원본이 네트워크상에 존재하거나 컴퓨터 서버에 존재해 원본조사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울 경우, 전자증거의 증거능력 판단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가 문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자소송에서 이 같이 증거를 보관하고 반환하는 등의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본격적인 전자소송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이런 관련규정과 문제점들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재판과정에 큰 혼선을 빚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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