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에 억울하게 강제입원된 환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신보호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피해자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따라 법조계에서는 법을 개정해 병원에 인신보호법 고지의무를 부여하는 등 대책마련과 함께 피수용자들이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법원이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법시행 1년 만에 인용사건은 고작 1건= 성형외과 의사로 잘나가던 A씨는 어느날 갑자기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됐다. 부인이 “남편이 마약을 상습적으로 투약한다”며 그를 마약중독자로 몰아 강제입원시켰기 때문이다. 한 순간에 유능한 의사에서 정신질환자로 전락한 그는 “마약중독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별다른 구제방법을 찾지 못하고 1년 여를 병원에 갇혀있던 그는 인신보호법이 도입되자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했다. 병원은 그를 정신이상자로 진단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그의 부인과 어머니의 동의만으로 정신병원에 강제수용됐고, A씨가 처와의 재산분할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었던 점, 가처분결정을 통해 병원에서 퇴원한 후 정상적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등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2009인1).
◇ 10명 중 7명이 가족에 의한 강제입원= A씨처럼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되는 환자는 매년 5만명에 이른다.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정신병원에 입원된 환자는 7만516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6년에는 7만967명, 2005년에는 6만7,895명이었다. 지원단 관계자는 “2008년 통계는 아직까지 취합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현재추세로 보면 작년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자의로 입원한 환자는 10%도 되지 않는 데 있다. 대부분 가족에 의해 강제입원 됐다. 2007년의 경우 72.4%에 달하는 5만1,028명이 보호의무자에 의해 강제입원되는 등 매년 70%가량이 가족에 의해 강제로 입원됐다. 10명 중 7명 꼴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가족의 인신보호청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병원이 직접 피수용자에게 인신보호법을 의무적으로 고지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인신보호법은 정신병원 등 감금시설에 입원된 환자들에 대해 수용시설이 인신보호제도를 고지·설명하도록 하는 별도의 의무규정 및 처벌규정을 을 두고 있지 않다.
◇ 법제정 과정에서 필수조항 빠져= 당초 나경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신보호법 초안에는 병원이 법원의 인용결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벌칙규정이 있었다. 구금자가 법원의 구금해제판결에도 불구하고 피구금자를 즉시 퇴원시키지 않거나, 퇴원조치 후 재구금시켰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제정과정에서 벌칙조항은 삭제됐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는 법원의 인용결정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이나 가족이 퇴원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일시적으로 퇴원조치를 한 뒤 재입원을 시키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또 법원의 직접조사조항이 삭제된 것도 문제다. 초안에는 법원이 구제청구를 받은 즉시 구금자와 피구금자, 그밖에 관계자로부터 구금사유 등에 관한 진술을 듣는등 직접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지만 최종안에서는 법원의 직접조사조항이 빠졌다. 이 때문에 법원으로서는 적극적인 피해자 조사가 불가능해 병원 등이 제출한 진료기록만 보고 판단할 수 밖에 없게 됐다.
◇ 소송비용 부담 ‘피해자 경제력 등 반영 안돼”= 소송비용부담 부분도 청구인의 경제력 등의 현실적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청구인 대부분이 오랜기간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어 사실상 경제적 능력이 없음에도 수백만원에 달하는 전문가 진단비용을 예납하도록 한 조항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자 대법원은 지난달 인신보호청구를 한 정신병원 수용자가 전문가 진단비용을 예납하지 못해 청구가 기각된 사건에 대해 “별도의 정신·심리상태를 진단하지 않고 곧바로 청구를 기각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2009인마2)을 내렸다. 법의 미비점을 보완해 청구인의 보호를 두텁게 한 것이다.
이영훈 법원행정처 형사심의관은 “현재 소송구조제도를 이용해 소송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가정보호심판사건과 같이 법관이 일정한 비용을 국고부담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조항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법원행정처, 인신보호제도 적극 홍보 계획= 법원행정처는 이와함께 인신보호법 홍보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신보호청구가 기대에 크게 못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이달 14일까지 접수된 인신보호청구사건은 70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이중 36건이 소취하됐으며, 13건만이 심리가 진행중이다. 나머지는 기각 또는 각하됐다. 7만명이 넘는 입원환자 가운데 법원에 구제를 청구한 사람이 0.001%도 되지 않는 70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인신보호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전무하다는 분석이다.
법원행정처는 국가인권위원회, 보건복지가족부와 연계해 인신보호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전국 관공서와 병원 등에 다양한 홍보물을을 배포할 계획이다. 또 올 하반기부터는 TV, 라디오, 지하철 광고 등도 병행할 예정이다. 지난달에는 보건복지가족부의 협조로 전국의 입원시설을 갖춘 정신보건시설에 인신보호제도 포스터를 부착하기도 했다.
이 심의관은 “올 하반기에는 인신보호사건 담당 재판장들을 대상으로 인신보호사건의 실무상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도 개최할 계획”이라며 “법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억울하게 강제입원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